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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민주적 거버넌스 패러다임이 확산되면서 정책에 대한 시민참여 역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국민은 일방적인 정책 대상으로서의 소극적인 존재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로서의 시민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양한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다. 층간소음과 같은 개인 간의 미시적인 갈등에서부터 연금이나 복지 갈등과 같은 거시적인 계층갈등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형태와 규모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갈등을 유형화하려는 시도들이 번번이 실패할 만큼 갈등은 일정한 틀에 따라 정형화되기 어려운 역동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갈등은 왜 발생될까? 어리석은 질문처럼 여겨질지도 모르는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찾으려고 고민하느냐에 따라 갈등의 예방 노력이나 발생된 갈등에 대처하고 관리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면서, 개인과 집단의 이기적인 욕심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갈등은 공공선을 해치는 분열과 혼란의 이음동의어로 정의된다. 즉, 갈등은 집단과 사회를 파괴하는 잘못된 현상이 되며, 따라서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단지 즉각적으로 제거되어야 걸림돌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갈등과 그 원인에 대한 이처럼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정부 주도의 개발시대에는 정책에 불만을 드러내고 반대하는 일이 고속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요소로 규정되었다. 예컨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NIMBY라는 부정적인 표현 속에서 이기적인 존재들로 규정되었다. 반대 측 주민들은 번번이 정부나 사회의 다수가 옳다고 여기는 일들을 반대하는 ‘일부 그릇된 주민들’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권위주의 정부 시대의 그림자를 벗어나 참여와 소통을 강조하는 있는 지금도 이러한 시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서로 간에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을 통해 다름의 폭을 줄이려는 노력 자체를 비용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정부와 산하 공공기관들 역시 시민 참여와 소통 노력을 비용으로 보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공재 생산 과정에서 시민들을 참여시키고, 소통하며 대화하려는 노력들이 불필요한 비용으로 계산되고 있는 것이다. 밀양 송전탑 사고는 생각의 다름에 대한 이해와 대화 노력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이다. 갈등 초기 밀양 주민들은 과도한 보상을 목적으로 전기 공급이라는 공공재 생산을 가로막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규정되었다. 그 결과, 한전을 비롯한 정부와 주민들 간의 적극적인 대화 노력은 매우 미흡했고, 갈등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밀양 송전탑 갈등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은 사업추진 과정에서 시간을 갖고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시키기 보다는 서둘러 사업을 정해진 기간 내에 끝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이들은 반대하는 주민들의 생각이 다름을 이해하고, 주민들과 대화하는 일에 여전히 소극적이다. 대화가 곧 낭비이고 갈등을 부채질할 뿐이라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 모여 참여적이고 민주적으로 거버넌스를 형성해 가야만 하는 시대이다.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들 간의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인식의 틀이 서로 다른데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국민을 위하는 정책이 또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불필요한 사업이며 예산 낭비일수도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갈등관리는 서로 간에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와 소통의 노력 속에서 다름의 폭을 좁혀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시간을 갖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키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된다. 심지어 그 자체로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나 정책이나 사업 초기 단계의 공유된 이해가 이후의 더 큰 갈등을 줄이는 최선의 방안임은 분명하다.
심준섭 (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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